사진은 꼭 ‘멀끔한 피사체를 찍은 다음,
이를 프린트해놓은 상태’로 존재해야 할까.
사진은 작업 그 자체가 아닌,
회화나 설치작업을 위한 어시스턴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회화 위한 유용한 도구
안경수
긴장감 넘치는 교외의 밤 풍경을 캔버스 위에 연출한 안경수 회화의 첫인상은 ‘사진적’이다.
어쩌면 사진을 ‘종이 거울’이라 믿는 누군가에게는 ‘사진 같음’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진 같은 그림’이란 표현은 다소 모순적이다.
사진은 어떤 대상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색감을 예로 들면, 어떤 대상을 찍든, 사진가 의도에 부합하는 특정 색상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
회화 역시 어떤 대상을 작가 심상에 의해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안경수의 회화에선 ‘사진 구조’가 읽힌다.
우리 눈으로 본 밤의 풍경이 ‘날카로운 콘트라스트’라면,
그의 밤은 명징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고감도 필름과 핸드헬드 방식으로 인해 노이즈가 발생한 사진 같다고 할까.
안경수에게 사진이란 ‘어시스턴트’ 성격이 짙다.
사진 없이도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그는 작업의 제약을 줄이는 데 사진을 이용한다.
‘찰나의 장면’을 작업할 때가 대표적이다.
사진의 시간에 박제된 장면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다만, 작업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을 곁에 두진 않는다.
작업 토대가 완성되면, 과감히 배제한다.
사진에 현혹될 경우 화가 고유의 퍼포먼스(보고, 느끼고, 사건에 개입하는 등)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과정이 사라지면, 회화가 ‘복제의 복제’로 전락할 수 있기에 늘 경계한다고 한다.
또한, 모든 것을 편평하게 만드는 사진은 대상의 질감을 살리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보고 싶은 부분, 최대한 묘사하고 싶은 부분을 찾아 그리려면, 장면 속 그 시간 그 장소로 돌아가 보고 느끼는 행위를 반복해야 한다.
안경수 사진의 핵심은 한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는 것.
사진은 카메라가 보는 시선인지라, 단 한 컷의 사진은 시점 왜곡의 위험성이 있어,
여러 장의 사진을 통해 시점의 간극을 줄이려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안경수에게 사진이란 ‘미술사 속 카메라 옵스큐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오브제화 된 사진
민성홍
민성홍은 드로잉, 사진, 설치,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탐구하고 이용한다.
전체적인 작업 맥락에서 그는 ‘생활하고 있는 환경과의 관계,
이 관계를 형성할 때 나타나는 인식 과정, 이 인식 과정에서 나타나는 순간적 감정’을 이야기한다.
최근에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다양한 이유로 버려진 일상의 사물들을 수집하고
변형·재조합하여 정체성과 경계의 모호함을 표현한 것’에 집중하고 있다.
민성홍과 사진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특정 상황이나 감정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기저에는 ‘사진의 기록성’이 자리 잡고 있다.
초기 작업은 순수한 의미의 ‘기록적 성격’이 강하다.
먼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저마다의 정체성을 갖고 타인과 관계 맺고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The Island>(2003)에선
14가지 색상의 얼음 블록이 동일한 조건에서 녹아내리는 과정을 기록했다.
또한, 일상 속 자신의 모습(신체적, 정신적)을 시각적으로 반복해 보여준 <17 Minutes 52 Seconds in 490 Square Feet>(2004-2006)에선
목탄 가루를 인화지 위에 불어 숨결의 모양을 담아냈다.
이후 작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내용적인 측면에선 실존 인물과의 관계에서 파생된 사건(event)으로 경계를 확장했고,
사진적 측면에선 ‘기록성’을 인화지라는 지지체를 넘어 오브제로 응용하기 시작했다.
핵심은 어떤 대상이나 장면을 찍은 사진을 잘게 찢어 다시 스카치테이프로 연결하는 것.
이때 사진은 개인적인 경험이 짙은 기억으로 치환된 것이며,
스카치테이프를 활용해 붙이는 행위는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렇기에 연약하게나마 기억을 붙들고 싶은 마음을 대변한다.
이처럼 민성홍의 사진은 사진의 표면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확장하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탄생한 ‘오브제화 된 사진’, 즉 그의 작업은 모뉴먼트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대 증후를 전달하는 매개체
이채은
왠지 모르게 익숙한 그림이다.
데자뷔인가 싶어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깨닫는다.
캔버스 위에 재현된 사건들은 언젠가 사진을 통해 한 번쯤은 보았던 장면이라는 것을.
이채은은 미디어와 SNS에 노출되는 뉴스 같은, 여러 채널을 이용해 수집한 자료들을 현재 시점으로 바라보고,
이들의 접점을 탐구한다.
작업은 이미지와 정보 과잉 속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함과 불편함에서 기인한 ‘의심’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작은 것부터 조금씩 어긋나 지금의 사회적 오류가 된 현상들에 주목한다.
이채은은 무의식중에 각인된 사건·사고, 대중 문화적인 이미지 등에서 떠오르는 키워드를 정리한 다음,
이에 들어맞는 사진을 배치해 ‘꽉 찬 회화’를 만들어낸다(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회화도 참고한다).
그는 머릿속에 주인공, 주변 인물, 배경 등의 구조를 전통적인 회화 방식으로 배치한 다음, 붓을 든다.
흥미로운 점은 특별한 스케치나 드로잉 없이 과감하게 붓 터치를 한다는 것.
이때 사진은 작업 속 미장셴이 평면성을 넘어 ‘실제성’을 가질 수 있을 정도까지만 참고한다.
다시 말해, 사진을 재현성을 위한 매체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캔버스 위 사건들을 하나씩 보면, 친숙함으로 인해 사진 속 대상의 아우라만 강화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채은은 이를 역으로 활용한다.
그는 차용한 사진에서 비치는(혹은 얻을 수밖에 없는) 직접적인 아우라를 보여줌으로써 작업의 스토리텔링과 임팩트를 강화한다.
또한, 일견 혼성모방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작업은 영화 구성 방법의 하나인 ‘지적 몽타주’에 가깝다.
서로 관련 없는 장면을 붙이되, 이들의 충돌에서 의미가 발생하도록 완급을 조절해 엮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 역시 평면적인 이미지들의 집합이지만, 영화를 볼 때 우리가 내용을 넘어 평면성까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과 진배없다. 그
렇다면 이채은 작업에서 사진은 동시대를 보여주는 레퍼런스이자, 영화의 신(scene) 역할을 한다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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