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치는 곡선과
찌를 듯 뻗어있는 직선
동그라미, 네모로 이뤄진 면과
알록달록한 색감
칸딘스키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정립하며
추상회화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합니다
자유로운 형태와 강렬한 인상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깊게 박히며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데요
자신만의 시각으로 탄생한
칸딘스키의 화풍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화가와 관객의 영감이 됩니다
현재까지도 수많은 이의
영감이 되는 칸딘스키의 작품들
그런데 그의 추상회화 작품들을 보다보면
한 가지 공통된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점, 선, 면으로만 이뤄져 있단 사실이죠
칸딘스키의 추상회화는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오직 점과 선, 그리고 면으로만
캔버스가 채워져 있죠
이렇듯 단순한 형태로만 구성된 작품은
때론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렇다면 칸딘스키는 왜
점선면을 그렸을까요?
칸딘스키의 추상 그림은 간단합니다
직선과 곡선,
점과 면으로만 이뤄져 있죠
때로는 각지게
또 때로는 둥글게
갖가지 요소는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며
작품에 대한 강한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뚜렷한 사물이나
소재를 알아보긴 어렵기 때문에
때때로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사실 칸딘스키는 서른살이
될 때까지 예술가가 아니었습니다
칸딘스키는 1866년
러시아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죠
어렸을 적부터 바이올린과
첼로 등을 다룰 줄 알았던 그는
한 때 음악가를 꿈꾸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칸딘스키가 대학에
가며 상황은 달라집니다.
그는 대학에서 법과 경제를 공부했습니다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둔 수재였죠
결국엔 실력을 인정받아
어린 나이로 교수로 임명되기까지 하는데요
다시 말해 그의 삶은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서른 살이 된 1896년
그의 삶을 뒤바꾸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칸딘스키는 모스코바의
한 전시장에 들르는데요
거기서 모네의 <건초더미>
시리즈를 만나게 되죠
그는 그 작품을 보고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왜냐하면 건초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묘사는 생략되고
오로지 빛에 비친 인상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칸딘스키는 사실 작품의 이름을 보기 전까지
그것이 건초더미인 줄도 몰랐죠
그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그림은 그의 기억
속에 강하게 새겨졌습니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색채 만으로도 경이로울 수 있다는 것
칸딘스키는 이 작품 앞에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이후 독일 뮌휀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가 그린 초기작을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칸딘스키의
추상회화와는 사뭇 다릅니다
초기 그의 대표작 <청기사>를 보면
이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의 형태는
바람에 휘날려 흐트러져있습니다.
대신에 기사의 나부끼는
짙은 파랑색이 강조되죠
대상의 형태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고
두터운 붓질과 색채로 인상만을 남긴 모습
칸딘스키는 당대 유행하던
인상주의 화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정확한 형태와 묘사보다
색과 인상으로 이뤄진 세상에 매료되었죠
유럽전역을 돌아다니며
그림 공부를 하던 그는
1908년 독일의 작은 마을,
무르나우에 거처를 둡니다
알프스 산기슭에 있는 이 마을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죠.
그는 다채로운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색의 표현을 실험하는데요
그는 이전과 달리
사물의 원래 색에서 벗어나
점차 다양한 색채를 쓰기 시작합니다.
칸딘스키의 색에 대한
철학은 더 과감해졌죠
칸딘스키에겐 나무가 꼭 갈색일 필요도
호수가 꼭 파랑색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는 대상의 실제 크기나
색에 구애받지 않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요
산과 비슷한 크기만큼
대담하게 나무를 배치하고
산은 새파랗게 칠해두었죠
화가가 바라본 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것
칸딘스키는 이러한 자신만의
철학을 구축해나갑니다
그러던 중 칸딘스키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예술가 집단을 만드는데요
그들은 스스로를 청기사파라고 불렀습니다
각자 방식은 모두 달랐지만
이들은 모두 예술을 통해
내면의 영혼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교류하며
화풍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이 시기 칸딘스키에게 또 한 번의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어느 날 작업실에 돌아온 칸딘스키는
깜짝 놀라 자리에 멈춰섰습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신비한 그림을
마주쳤기 때문이었죠
화면은 색채의 찬란한 얼룩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가까이에서 살펴보자
그는 곧 실망하고 말았는데요
칸딘스키 자신이 그린 그림이
옆으로 눕혀져 있었기 때문이었죠
무엇을 그렸는지를 알고 나자
아무리 다시 눕혀도
처음 보았던 아름다운 빛은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예술가의 시선, 철학, 감정 등의 내적 요소가
작품의 형식을 결정한다는 것이죠
이후 칸딘스키는 자신만의
이론을 정립해 이론서를 내놓습니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이 책은 당대 예술가와
지식인들에게 호평을 받았는데요
칸딘스키는 이 책을 통해
캔버스 위의 색과 형태는
본질적으로 작가의 내면세계를
반영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작가가 대상을
억지로 따라한 그림은
내면세계와 단절된다고 여겼죠
즉, 화가가 느낀 감동을
감각적으로 표현해야
그것을 보는 관람자도
감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로 칸딘스키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중하며
더 많은 작품들을 탄생시킵니다
칸딘스키는 자신만의
예술철학을 구축해나가며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특히나 1910년대에 들어서는
색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는데요
다양한 색깔과 재료를 연구하며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색채연구를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한계를 느낍니다
그림 속에서 아무리 색을
다채롭게 변형한다해도
결국 자연을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와중
칸딘스키는 한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됩니다
음악이 자연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흉내내지 않고도
훌륭한 예술을 만드는 것처럼,
미술도 자연 그대로를 흉내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보았죠
어렸을적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칸딘스키는 작업을 하기 전이나
작업을 하는 중에 음악을 들었습니다
때때로 음악을 들으며 이미지를
떠올리고 이를 표현해 적용했던 그에게
음악은 내면을 표현하기에 최적의 도구였습니다
음악은 자신의 눈앞에서 그림으로 바뀌었고
칸딘스키는 이를 캔버스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건반을 눌러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예술가는 색을 써서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낸다고 보았죠.
그는 이러한 생각을 발전시켜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의 외형을 따라하는 그림들을
단순한 ‘멜로디’라고 불렀죠
그러나 외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그려낸
복잡한 그림은 교향곡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혼의 강한 울림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교향곡이라 생각했죠
회화에서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교향곡을 온전히 그려내는 것이었습니다
칸딘스키는 이러한 생각을
화풍에서 녹여내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습니다
칸딘스키의 컴포지션 연작을 보면
구체적이었던 형상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초기엔 형태가 비교적 명확해보입니다
춤을 추는 사람 같기도 하고
말을 탄 사람 같기도 하죠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그림은 더 복잡한 형태와
색을 띄게 되었습니다.
칸딘스키는 이것이 점점 더
교향곡에 가까워지는 것이라 생각했죠
음표라는 완전한 기호로 표현되는 음악처럼
칸딘스키의 작품에도 형태는 사라지고
구성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음악은 최고의 선생님이다”
동료들과 함께 구축한 청기사파는
전시 등 많은 걸 기획했지만
1910년대 1차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이후 칸딘스키도 독일을 떠나
러시아로 돌아왔죠
이 때에는 그림을 그리기보다
문화연구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러시아의 문화정책에 관여하기도 하고,
예술교육 정책에 관여하기도 했죠
특히나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21년
한 학교에서 그를 교수로 초빙합니다
바로 독일의 바우하우스
바우하우스는 공예분야의 장인을
육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였는데요
디자인, 건축, 순수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치는 학교였습니다
이곳엔 다양한 창작자들이 모였는데요
그들은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며
예술의 본질을 탐구헀습니다
칸딘스키는 이곳에서 순수미술과
색이론 등을 가르쳤는데요
학생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켜나가기도 했죠
칸딘스키는 1923년 <점,선,면>
이라는 이론서를 두번째로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화가로서 세상 만물로부터
감상을 얻는 방식과 이를 표현하는
방법을 담아낸 책인데요
칸딘스키는 모든 그림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점과, 선, 면만으로도
화가의 감동을 표현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점은 아주 작지만 때론
확장되거나 형태가 일그러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가장 간결하지만
다양한 형태로 그려질 수 있죠
화가의 감정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담아낼 수 있습니다
또 선은 화가가 생각하는
방향성과 힘을 그려내는 도구죠
때문에 직선이냐 곡선이냐,
상승이냐 하강이냐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또한 평면은 그 형태와 색,
각도에 따라 정서나 무게를
나타낼 수 있다 보았죠
칸딘스키는 동서양의 다양한 물질로부터
이를 체계적으로 착안해내는
방식을 고민했는데요
이 책 속에
자신의 시선으로 각각의
물질로부터 받은 감상과
이를 색과 형태로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담아냈습니다
칸딘스키는 점,선,면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색채만으로도
예술가가 느낀 감흥을 전달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이후 칸딘스키는 더
단순한 방식으로 작품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완성되었죠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가장 간단한 도구로 표현하는 것
칸딘스키에겐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연구도 잠시
독일에는 나치가 도래했습니다
질서를 중시하는 히틀러에게
계속 진보적인 디자인과 예술을 꿈꾸는
바우하우스의 작품들은 눈엣가시였죠
결국 1933년 히틀러는
바우하우스 폐쇄시켜버립니다
이후에는 퇴폐미술전이라는 전시회를 열어
히틀러의 생각과 반대되는
미술들을 조롱하고 금지하죠
칸딘스키의 작품도
전시회에 걸린 그림 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그림들은 뺏겨서 없어지기도 했죠
핍박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파리로 이주합니다
그러나 이미 널리 조롱당한 그의 그림은
이전처럼 팔리지 않았습니다
국적을 프랑스로 바꿔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정장을 차려입고 경건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죽는 마지막 해까지 그는 그림을 그렸죠.
죽기 5년 전에 그린
그의 마지막 <구성>연작입니다.
칸딘스키에게 검은색은 죽음을 뜻합니다.
음악이 영원히 끝나는 것을 의미하죠.
그 죽음 위에
그는 다채로운 색을 그려 넣었습니다.
마치 죽음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의 작품들은 말년에 가까울수록
어두운 색감을 풍기지만
색을 잃지 않습니다
그는 절망 속에서도 놓지 않은
화가의 영혼을 그려넣었습니다
현대추상회화의 아버지 칸딘스키는
1944년 77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합니다
“예술가는 그의 눈뿐만이 아닌 영혼을 훈련해야한다”
현재까지도 칸딘스키의 그림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자유분방한 선과 색채로부터
많은 이들의 영감이 되기 때문이죠
실제로 칸딘스키의 그림은
미술치료와 미술교육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그림입니다
이는 그림 안에서 화가의 영혼이
자유롭고 조화롭게 어우리길 바랐던
칸딘스키의 마음이 우리에게
닿기 때문은 아닐까요?
출처 :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902787&memberNo=42349422&navigationType=push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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